rainbow connection

redchick19.egloos.com

포토로그 마이가든



봄장과 낭만미장원 조용한 수다

동대문에 ‘디자인이 서울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이다. 그노무 디자인이 줄창 서울을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집에만 있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좋은 날씨였다.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은 담장을 따라 걸어가다 보니 갤러리 옆쪽을 따라 좌판이 늘어서 있다. 색색의 기기묘묘한 물건들과 장신구, 프린트가 화려한 선드레스, 각종 주전부리, 마실 거리, 애들 담요까지... 별 게 다 있었다. 눈요기만으로도 즐거웠다. 스피커에서는 레게음악이 주구장창 흘러나오고 있었고, 사람들은 누가 장사치고 누가 손님인지 모르게 태평했다. 고사상이 차려지고 풍악을 울린다. 떡을 돌린다. 막걸리를 나눈다. 판이 벌어질 때마다 아이는 신이 난다. 어디서 배웠는지 들썩 들썩 엉덩이춤을 춰대더니 박수를 손이 떨어져라 쳐대고, 만세 삼창에 뒷짐 지고 무대를 배회한다. 무대라면 영판 질색인 나는 멀찍이서 입 벌리고 쳐다만 보았다.


봄장과 낭만미장원 홍보를 열심히 하겠다고 퉁치고 결국 커트포를 썼다. 내내 돌아다니던 아이가 마침내 기운이 떨어졌는지 계속 안아달라고 떼를 쓴다. 결국 아이를 안고 커트포를 둘렀다. 흰 보자기 안에 갇히자 또 애가 찡찡댄다. 고개만 빼꼼 내주었다. 미용사 선생님은 바람이 엄청나게 불어대서 아이 눈에 머리카락이 들어 갈까봐 걱정하신다. 나는 행여 무르실까봐 괜찮다는 말만 연발한다.


지친 아이를 데리고 전철에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중간 중간 유리로 된 것이 있을 때마다 새로운 나를 비춰보았다. 처음만큼 어색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그 묘한 모양새가 끌렸다. 얼굴을 거지반 가리고 있던 머리가 사라지니 밋밋하나마 이목구비가 돋보인다. 양쪽이 다른 모양이라 역동적이고 입체감 있다. 볼수록 재밌는 머리 모양이다. 아이도 신기한지 자꾸만 만져본다.

오늘 내가 잘라내고 온 것, 바람에 날려버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를 가리고 있던 것, 덥수룩이 뒤덮고 있던 것. 나도 모르게 내게 엉켜 있었던 것은. 누구 엄마, 누구 와이프는 아니었을는지. 다 쳐내고 나자 거기엔 장세나만 있었다. 재밌다는 듯이 눈을 또록또록 굴리며 신기한 듯 제 자신을 쳐다보는 한 여자만이 있었다. 얼굴을 훤히 드러내고 이게 나라고 당당히 주장하고 있었다.

디자인이란 신기하다. 언뜻 쓸 데 없는 일인 것만 같다. 먹어서 배부른 것 아니요, 보여서 잡히는 것도 아니다. 도무지 소용이 닿지 않는 허세요, 낭비인 것만 같다. 하지만 어떤 디자인으로 인해 인간의 삶은 달라진다. 훌륭한 건축은 거기 있으므로 그 안에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빼어난 손길은 거기 닿으므로 삶의 모양을 바꾸어놓는다. 그깟 머리카락, 푸른 지폐 몇 장이면 자르는 것을 놓고 너무 거창한 말을 늘어놓는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나는 겨우 그 머리털 한 줌으로 인해 디자인에 대해 새로이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디자인은 사람을 바꿀 수 있다.


최근 영인 조용한 수다


스칼라좌 팬웨이파크

마리아 칼라스가 스칼라좌에서 공연한 아리아를 듣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생에 다시 스칼라좌에 갈 수 있을까?
정작 2006년에는 그런 고민이 없었다. 그때는 나의 인생은 오로지 나에게만 속한 것이어서 내가 원하면 언제든 밀라노건 쿠바건 발길 닿는 대로 떠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러했었다.

박찬호를 통해 MLB를 알게 되고 타국의 리그에 관심을 갖게 되어, 낯선 이름들을 하나씩 되뇌이게 된 이후. 
팬웨이파크에서 야구를 보는 것은 나의 오랜 꿈이었다. 나는 그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나에게 단 한 달만이 주어진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홀연히 떠날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결국 이 아이 없이는 아무 데도 갈 수 없고 아무 것도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신기하게도 이것은 체념이 아닌 안도였다. 


세상의 모든 계절

세상의 모든 계절(Another Year)을 보았다. 미루고 미루던 고민이 들었다.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가만히 있어도 늙지만. 이 고민은 꼭 필요한 것 같다. 인생은 그냥 내버려두면 높은 확률로 시궁창에 빠지게 되는 것 같다. 이런 저런 말로 미화해대긴 하지만 난 노화가 싫다. 늙는 게 싫다. 젊음에 비해 비참하다. 아름다운 노년 이런 건 로또보다 어렵다고 생각한다.(실제로 로또 맞은 이들의 노년도 대부분 비참하다.) 늙으면 젊었을 때보다 더 비참하고 불행할 확률이 높다.
1. 여기저기 아플 것이다.
2. 사랑하는 사람들이 줄줄이 죽어갈 것이다.
3. 돈이 없어도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두려움을 누구나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저축이나 보험 같은 데 돈을 쓸 것이다. 솔직히 말해 난 이 글을 쓰기 전까지 한 번도 그런 걱정을 안해봤다. (힉!) 저축도 없고 보험도 안 들었다. 이런 재정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과 대비도 언젠가는 시작해야 할 것이다..
내가 오늘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한 부분은 그런 물질적인 쪽은 아니었다. 심리적인 부분, 관계에 대한 부분들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아이가 공부하기 싫다고 할 때

영인아. 엄마는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도 꽤 똑똑한 아이였단다. 그걸 감추려고 하지 않아서 재수없음을 유발하는 종류의 똑똑함이었지. 그리고 너처럼 공부하는 걸 싫어했어.
당시에 나는 꽤나 타당한 근거를 갖고 있었단다. 바로 너처럼 말야.
지금 읽어야될 재밌는 책이 있는데 왜 멍청한 교과서 같은 걸 들여다 봐야 하지?
학벌이 뭐가 중요해? 아빠처럼 한심한 공무원(외할아버지는 공무원이셨단다)이 되진 않을 거야.
그래서 뭐가 될 거냐구? 음... 몰라. 하지만 난 뭐든 될 수 있다구!
엄만 책 읽는 게 좋았고 이게 직접적으로는 그 영향이 보이지 않지만 간접적으로 내 인생을 좋아지게 할 거라는 낙관을 품고 있었단다. 지금 생각해 보니 매주 로또를 살 걸 그랬구나.
물론 공부를 하지 않아도 먹고 살 방법은 많이 있단다. 그 중엔 멋진 직업도 많지.
야구 선수는 어떠냐. 엄마가 널 가졌을 때부터 뇌가 고착된다는 5세 이전에 줄창 보여줬으니 아마 넌 야구 조기교육의 수혜자일게다. 게다가 넌 친가쪽으로 광주의 혈통이 있어. 일종의 야구 유전자라고 할 수 있지.
전국적으로 너와 같이 야구를 사랑하는 많은 아이들이 지금도 땀을 흘리고 있다. 물론 이것도 하다보면 공부 못지않게 지겹고 짜증나는 일이긴 해. 아무튼 니가 그 고비를 다 넘기고 계속 야구를 하고 있다고 치자.
그중의 단 열명 정도가 프로야구 리그에서 뛰게 된단다. 그들이 다 선동렬 장종범 같은 선수가 되느냐. 그건 또 다른 문제야. 대개는 그 이듬해에 볼 수 없는 존재가 된단다. 겨우 엔트리에 빌붙은 이들조차 선수라는 이름을 유지하기 위해 류현진 같은 선수들과 계속 상대해야 하지. 
영인아. 얼굴이 어두워졌구나. 야구의 예는 너무 비참한 것 같다. 그래. 엄마가 되고 싶어했던 소설가 얘길 해줄게.
아까도 말했다시피 엄만 너만할 때부터 책읽는 걸 좋아했단다. 평생의 취미지. 그리고 언젠간 나도 이런 멋진 일을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왔어. 그건 착각이란다.
한해에도 수많은 신인문학상 수상자들이 쏟아져 나온단다. 물론 일반인들은 그들의 존재를 몰라. 그러거나 말거나 엄청 열심히 계속 소설을 쓰지. 어떤 이들은 다른 일을 병행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소설이라는 작업에 집중하면서.
양쪽 다 애로사항이 있지만 후자는 특히 비참하단다. 직업으로써 소설가라는 건 무직이라는 것도 일치하거든. 이건 달리 말하면 명절에 조카한테 용돈을 받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란다. 물론 사회복지의 긴 손조차 이들에겐 미치지 않아.
대부분의 염치 있는 사람들이 이 험란한 종주 도중 낙오한단다. 몇몇 질긴 소설가들은 바퀴벌레와도 같은 인내심으로 계속 소설을 쓰지. 쟁쟁한 선배들과 비교당하면서 말야. 요즘은 늙은 소설가들이 안 죽고 소설을 계속 쓰는 경향이 있거든. 의료과학 발전의 폐햬라고 할 수 있단다. 결론은 뭔줄 아니? 여전히 아무도 그를 모른다는 거란다. 한국의 순문학 독자는 5000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거든. 당연하게도 과장된 숫자란다.

니가 공부를 하지 않으면 높은 확률로 아무 것도 안하는 사람이 돼. 바로 엄마처럼 말이다. 물론 니가 공부를 열심히 한다 해도 아무 것도 안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겠지. 슬프게도 엄마 주변엔 그런 사람이 많구나. 하지만 눈을 돌려보면 대개의 사람들은 약간 열심히 공부를 하고 거기에 걸맞은 적당한 점수를 받는단다. 그리고 인생이라는 물결에 휩쓸려 적당한 직업에 표류하지. 사무원이라거나 공무원이라거나. 왜 있잖니, 그런 종류의 일들. 일종의 구명조끼라고 할 수 있지.
다행히도 그 쪽은 야구선수나 소설가보다는 구명조끼 확보가 넉넉한 편이란다. 물론 그게 아주 멋지고 흥미진진한 모습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구나. 하지만 엄마는 되도록 니가 빠져죽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단다.

그게 지금 니가 나가놀아서는 안되고 구몬학습을 마저 해야하는 이유인 거야.


1 2 3 4 5 6 7 8 9 10 다음